국제표준의 이해

표준의 태동 및 발전

인류 역사상 최초의 표준은 BC 7000년 경 이집트에서 무게의 단위로 사용하였다는 표준화된 원통모양의 돌로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첫 번째로 시행한 일 중의 하나가 도량형의 통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자가 국부를 늘리려는 수단으로서 민간의 상거래에 대한 공정성을 제공하는 한편 조세징수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표준을 제정, 운영했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이후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표준화가 몇 가지 역할을 추가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음을 예로 들 수 있다.

먼저 표준부품의 활용이다. 17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어선을 제조하기 전에 교체가 가능한 부품의 수를 정하고, 이 부품들을 모듈화함으로써 어선을 획기적으로 빠른 시간에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표준화에 대한 네덜란드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네덜란드의 표준화기구인 NNI는 ISO 및 IEC에서 30개에 이르는 기술위원회의 국제간사직을 수행하는 등 국제표준화 활동에서 상당부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네덜란드인들의 경험은 미국으로 전파되어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표준화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Eli Whitney는 과거의 군용 소총들이 한 정씩 수작업으로 개별 제조됨에 따라 제조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편, 하나의 부품만 고장이 나더라도 이것을 전장에서 바로 교환할 수 없어, 사용할 수가 없게 되는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총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모두 표준화하고 공작기계를 사용하여 부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당시 획기적이었던 표준부품의 사용이라는 기술로 그는 1804년 미국 정부로부터 조달규모 중 최대 금액인 $134,000의 납품 용역을 따내고 이를 성공시켰다.

또한, 제품만이 아니라 제조공정에도 표준화가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선도한 사람은 자동차왕으로 불리우는 헨리 포드이다. 헨리 포드는 숙련노동자 몇 명과 도제들로 이루어진 작업반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경영자가 실권을 갖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모든 자동차 제조공정을 세분화하고 표준화하여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라도 단기간의 직무훈련 후 바로 생산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헨리 포드는 당시로서는 최고수준의 임금을 일반 노동자에게 지불하면서도 회사 전체로서는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제품 표준화와 생산공정의 표준화는 서로 연결되어 20세기 산업사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대량생산시대를 가능하게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기의 사례 이외에도 표준화가 세인의 관심을 크게 증대시킨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볼티모어의 대화재를 들 수 있다. 1904년 볼티모어 시내 중심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충분한 소방차를 구할 수가 없어, 타 도시에서 가져온 소방차의 호스와 볼티모어의 소화전간에 연결부위의 규격이 서로 달라 사용이 불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초기 진화가 가능할 수도 있었던 불길이 대화재로 번져 70개 블록의 1,526동에 이르는 건물이 소실되는 등, 수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많은 서구인들이 표준화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표준의 태동

앞서 기술한 사례들은 모두 표준화의 좋은 사례이기는 하나 국제표준의 탄생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국제표준을 인류가 필요로 하게 되기까지에는 몇 가지 다른 요건들이 성숙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표준이라는 것은 국가간에 교역 또는 교류가 본격적으로 있기 전에는, 그것도 다자간 교역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전한 폐쇄경제를 갖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국가표준은 필요할지언정 국제표준은 필요치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인류가 국제교역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전까지는 국제표준의 필요성은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국제교역이 활성화되는 데에는 우선 국가별로 잉여재화가 많이 발생하여야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초기 농업사회에서는 국가별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은 그 국가의 지력이 결정하였다. 인구도 지력에 달려있었으며, 당연히 이들이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양도 지력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국가간 교역은 일부 부유층의 호사를 만족시키거나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품목에만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생산량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이 때부터 재화의 생산을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으로 담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영국과 같이 지력이 떨어지는 국가도 대량으로 직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재화를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팔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잉여재화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국제교역이 시작되는 데에는 또 한 가지 기술적 돌파구가 필요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대량 물류수송수단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의 재화를 수송할 수 있는 수단은 선박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나서도 상당기간 동안은 순전한 기술적 이유 때문에 증기기관을 이용한 상선단이 활동하지 못하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초기의 증기선이 외륜(外輪)을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외륜은 호수나 강과 같은 잔잔한 수면에서만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관계로, 북대서양과 같이 파도가 높은 바다에서 외륜이 모두 물에 잠길 경우에는 추진력이 완전히 상쇄되기 때문에 대양횡단 선박에서는 사용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스크류 방식의 추진기가 사용된 것은 1830년대가 되어서였다. 그러나 스크류 방식의 추진기가 나온 다음에도 몇 십년의 시간이 더 흘러서야 대서양에 증기상선단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증기기관이 효율성이 낮아서 대서양 횡단도중에 3~4차례 석탄보충을 위해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화주들은 계속해서 일반 범선에 그들의 화물을 맡겼으며, 이는 1860년대에 3차 팽창방식 증기기관(Triple Expansion Type Steam Engine)이 등장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증기기관이 중간 연료 보급없이 대서양 횡단을 가능케 하면서 증기상선단이 출현하게 되었고 유럽의 공산품과 신대륙의 1차 산품이 본격적으로 교환되었다.

따라서 인류가 다자간 국제교역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1850년대 이후이며, 바로 이 시기부터 인류는 국제표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바로 이 시기가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많은 국제기구들이 태동한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이 시기는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하고, 수에즈운하가 개통(1869년)되어 세계화가 활성화된 시기와도 일치한다.

국제표준기구의 설립

이상과 같은 배경하에서 공식적인 국제표준제정 논의가 시작되기 시작한 것은 미터 시스템을 통한 도량형의 통일을 다루기 위한 국제적 기구로서 국제도량형국 (Bureau Internationale des Poids et Measures:BIPM)이 설립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국제규격들은 시간과 항해에 관련되는 규격이 대부분이었는 바, 1884년 전세계(물론 유럽이 주도)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한 자오선을 경도의 ‘0’으로 승인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조직은 1921년에 표준화의 대상을 확대하여 전기단위나 전기표준을 취급하게 되고, 그 후의 작업활동에서 전기단위를 세계적으로 승인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1904년 9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국제전기회의(International Electrical Congress)에서 각 국 정부대표는 “세계의 기술협력을 공고히 하여 전기기기의 용어 및 정의에 대한 표준화 문제를 심의하는 대표자회의를 설치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의 후속조치로 그 준비회의가 1906년 6월 미국,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스페인, 독일, 일본, 헝가리, 프랑스, 벨기에 등 13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런던에서 열려 최초의 규약을 작성하였다.

1908년 10월의 런던회의에서는 1906년의 규약안을 수정, 보완하였으며, 여기서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가 14개국의 회원으로 정식 발족하였는 바, 국제표준화는 전기기술 분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IEC의 소재지는 IEC창설을 주도한 영국의 런던에 두었으며, 1947년에 제네바로 이전할 때까지 존속되었다. 이후 IEC는 국제표준화의 흐름에 맞추어 발전을 계속하여, 1963년에 이르러서는 현재와 같은 IEC의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IEC설립에 영향을 받은 타분야, 특히 기계공학분야에서의 표준화를 위한 국제적 협력 가능성이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1926년, 세계의 주요 표준화추진국가(20여개국)들이 뉴욕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국가표준협회 국제연맹(ISA:International Federation of the National Standardization Association)을 창설하였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 및 전쟁발발의 징후가 증대함에 따라 30년대 말에 몇몇 회원국이 탈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1942년 ISA는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지했다. 1944년에 18개 연합국으로 구성된 유엔표준화조정위원회(UNSCC:United Nations Standards Coordinating Committee)가 전쟁의 와중에 ISA의 역할을 이어받았으나 이는 임시적인 전시기구에 불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1946년 10월 14일 25개국 64명의 대표들이 공업표준화의 국제적인 협력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새로운 국제표준화기구를 창설하기 위해 런던에서 회합하여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동년 10월 24일 첫 임시총회를 런던에서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ISO의 헌장 및 시행규칙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15개 국가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는 즉시 공식적인 기능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947년 2월 23일 15개국의 승인이 임시 중앙사무국에 접수되어 이 날이 ISO의 설립일로 기록되고 있다. 동시에 IEC는 독립을 유지하면서 ISO의 전기부회로 가입하여 참여키로 결정하였다. 현재 세계 각 국은 최초로 25개국 64명이 런던에서 모인 1946년 10월 14일을 국제표준의 날로 정하여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근대적 국제표준의 발전

1947년 ISO가 창설되었을 때는 약 15만 여 종의 국가규격들이 존재하고 있었는 바, ISO는 우선 이 국가규격들을 국제화시키는데 최대한 중점을 두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종전 후 세계 각 국은 국제협정에 큰 이해관계가 없었으며 다만, 국가적 표준화만이 관심사항이었다. 대부분의 회원국들이 국제표준화가 유용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ISO는 1950년대 초반까지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초기의 국제규격은 제도총칙, 오차, 단위 및 심볼과 같은 기계공학의 기본적인 추상적 기준이나, 나사, 볼트, 너트, 볼 및 로울러 베어링, 강과 같이 기계공학의 주요 요소부분에 대한 규격에 치중되었다. 이러한 표준화 작업은 선진국들이 자국의 국가규격을 고집하는 뿌리 깊은 관행으로 인하여 지연되었으며, 회원국들은 규격을 쉽사리 국제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ISO의 활동은 화학공학, 데이터처리, 원자력분야 등과 같은 새로운 첨단분야의 규격을 국제화시키고자 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이는 몇몇 선진국들의 관행이 보다 광범위하게 전세계에 확산, 인식되기 이전에 국제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자각이 회원국들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표준화는 1960년대를 맞이하여 실질적인 의미에서 큰 발전을 거듭하였다. 육상 해상 항공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은 국제적 무역교류를 더욱 왕성하게 하여 각 국간 국제표준화의 교류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으며, 특히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국제표준화 사업은 성장의 길로 진입하게 되었다.

  • 국가규격의 차이로 인해 활동에 지장을 받아온 다국적기업의 발전
  • 국제적,기술적으로 조화된 규격 개발이 필요하다는 회원국 정부의 인식 변화
  • 개발도상국에서의 표준화단체 설립을 위한 활발한 활동
  • 상이한 분야에 대한 참여 확대로 인한 ISO규격제정 대상범위 확대
  • 기술적 문제에 대한 국제적 규칙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타 국제기구의 인식 제고

1970년대 이후 회원국들의 ISO활동은 더욱 활발해져, 오늘날에는 제조업체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 연구소, 소비자단체 및 국제기구들이 ISO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한 1980년 1월 1일을 기해 발표된 GATT의 무역상기술장벽협약(Standard's Code)의 발표로 국제표준화는 내용과 질 및 작업속도에서 새로운 장을 펼칠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첨단분야 및 신소재분야의 기술발전, 자유무역 이행을 위한 각국간 시장개방 압력과 마찰의 심화, 우루과이라운드의 진행 등으로 국제간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나,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임에 따라 세계 경제의 블록화 현상 및 기술적 제재조치가 강화되고 있어, 국제표준화활동에 있어서 이러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전과는 다른 활동의 필요성이 요청되게 되었다.

국제표준화의 최신동향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국제표준화 동향의 가장 큰 맥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표준이 시장의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80년대까지의 표준은 선진 각국에 의해 시장수요 확대 및 원가절감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선진 기업들은 규격의 단순화 통일화로 기계화 ? 자동화를 촉진하여 산업시대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표준은 선진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MS WINDOW, ORACLE 등은 제품자체가 단일 국제표준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으며, 또한 인터넷 및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 확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네트워크형 제품이 탄생하였다. 예를 들면 DVD, HDTV, MPEG, ITS(지능형도로교통정보시스템)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한 신기술 제품의 경우 생산 이전에 세계적 대기업들간 표준화 논의가 선행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여 일정 지분을 확보한 기업만이 미래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단일 국제표준에 대한 요구가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동 서 냉전의 종결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대거 시장경제로 편입시켜 세계 시장을 하나로 통합시켰으며, 이와 더불어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들은 국경을 무시한 최적의 투자지역을 R&D, 생산, 유통 및 판매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Global Outsourcing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간에 서로 상이한 표준 및 적합성평가제도 등 불필요한 무역상 기술장벽을 철폐하고 국제적인 단일 표준의 사용을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단일표준에 대한 요구는 공식적인 국제 기구를 통해서도 가시화되었는 바, ’95년 1월 발효한 WTO/TBT 협정에서는 회원국이 국가표준을 새로이 제정하거나 개정할 경우 국제표준을 기초로 사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APEC 정상회담에서는 자국의 국가표준을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까지 국제표준에 완전 일치시키겠다는 것을 합의하는 ‘오사카 행동지침’을 채택하였으며, 특히 전기전자기기, 기계류, 식품라벨링, 고무제품 등 4개 우선 일치화 대상 품목은 선진국 2005년 개도국 2010년까지 국제표준에 일치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기타 분야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우선 일치화 대상품목을 선정하여 점진적인 표준 통일 추진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 국가간 상호인정협정 체결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단일 표준의 사용을 통한 범세계적인 자유무역을 추구하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 이의 실현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선진 각 국은 국가간 교역에서 나타나는 실질적 기술장벽은 제품이 표준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시험 검사 인증하는 적합성평가 행위임을 고려하여 수출 상대국의 적합성평가 결과를 상호인정하기 위한 협정 체결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 표준의 적용 분야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종래의 표준이 주로 제품의 구조, 성능, 시험방법 및 용어만을 규정한 데 반하여, 90년 이후에는 품질경영시스템, 환경경영시스템 등 모든 업종에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 표준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스템표준은 작업장안전보건시스템, 요원관리 등 각종 인증과 관련된 표준으로 발전하여 인증산업을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시키게 되었다. 또한 2000년에는 ISO에 TC222(재무관리) 기술위원회가 신설되는 등 표준화의 대상이 2차 산업 중심에서 3차 산업인 서비스 분야로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서비스 표준화는 교통, 숙박업, 픽토그램 등으로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